말레이시아 수도-쿠알라룸푸르의 탄생

halalmedia | Posted 2019/11/03 [14:00]

말레이시아 수도-쿠알라룸푸르의 탄생

halalmedia | 입력 : 2019/11/03 [14:00]

쿠알라룸푸르는 1857년 곰박 강과 클랑 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세워진 도시이다. (말레이어로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는 “흙탕물의 합류”를 뜻한다.) 정착지는 슬랑오르의 왕족인 라자 압둘라가 주석 채굴꾼들에게 클랑 밸리(Klang Valley)를 개방하면서 건설되기 시작했다. 87명의 중국인들이 클랑 강을 거슬러 올라가 암팡 지역에서 주석 채굴을 시작했다. 그 가운데 69명이 토착 역병으로 인해 사망했지만, 주석 광산은 가파른 성장을 시작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채굴꾼들을 상대로 주석과 생활에 필수적인 물품들을 거래하던 상인들을 끌어들였다. 이 상인들이 곰박 강과 클랑 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상점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도시가 시작된 것이다.

마을이 커짐에 따라, 당시 말라야 지역을 통치하던 영국인들은 법과 질서 유지를 위해 지도자를 선임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첫 카피탄 치나(Kapitan Cina, 영어:captain china, 중국인들의 지도자)로 휴 슈(Hiu Siew)를 임명했다. 세 번째 카피탄 치나였던 얍 아 로이(Yap Ah Loy) 때에 와서, 조용한 광산 마을이었던 쿠알라룸푸르는 슬랑오르 주에서 가장 앞선 선진 도시가 되었다. 초기에 쿠알라룸푸르는 슬랑오르 내전의 중심에 있었는데, 그 내전 가운데 하나는 슬랑오르 왕자들의 주석 광산 채굴 이권을 둘러싼 다툼이었고, 다른 하나는 카피탄 자리를 놓고 카피탄 얍과 그의 자리를 뺐으려 했던 총 총(Chong Chong)간의 반목에 따른 싸움이었다. 카피탄 얍과 그의 후원자였던 텅쿠 쿠딘(Tengku Kudin)이 승리하였고, 얍의 뛰어난 지도력 하에, 쿠알라룸푸르는 슬랑오르의 가장 큰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는 내전의 피해를 입은 쿠알라룸푸르를 재건하였고, 슬랑오르 다른 지역의 중국인 채굴꾼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그는 또한 지속적인 식량 공급을 위해 말레이인 농민들을 쿠알라룸푸르 근교에 정착하도록 유도했다.

카피탄 얍의 성공으로, 쿠알라룸푸르는 1880년에 슬랑오르 주의 주도가 되었다. 그는 쿠알라룸푸르 최초의 학교를 건설하였으며, 무주택자를 위한 보호소를 건설하였다. 얍 자신도 하이 산 비밀결사의 회원이기도 했기 때문에, 도시에서는 갱단간의 싸움도 자주 일어났었다. 얍은 유곽, 카지노, 술집에 허가를 내 주었다. 얍의 사망 후 도시가 번영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슬랑오르 주지사였던 프랭크 스웨트넘 경의 덕분이었다. 1896년, 스웨트넘의 감독 하에 말레이 연방주가 만들어지면서, 쿠알라룸푸르는 수도가 되었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쿠알라룸푸르

▲ 쿠알라룸푸르의 기원이 되는 두 강의 합류점. 델타 부분에 세워진 건물은 마스지드 자멕     © halal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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